[중앙일보 2009.09.21]

단골이 인정한 전설의 달력

달력업계의 스테디셀러 ‘한국의 야생화’ ‘펜화’



사진가 김정명(63)씨와 펜화가 김영택(63)씨는 달력업계에서 불황을 모르는 무쇠 사나이로 불린다. 해마다 10월께면 벌써 단골들의 주문이 이어져 정작 새해가 되면 두 사람 달력 구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수십 년 한우물을 파며 뚝심으로 이 바닥의 전설이 된 장인들이다.

김정명씨는 ‘야생화 사진가’로 호가 났다. 지난 20여 년 백두산부터 한라산까지 들과 산을 훑고 다니며 한국 야생화 사진만 찍었다. 독학으로 깨우쳤다지만 식물학 전공자가 울고 갈 지경으로 야생화에 관해서는 세상 으뜸을 자부한다.

김씨가 1998년 처음 찍어 발표한 동강할미꽃은 바로 축제로 이어져 정선군이 그를 명예 군민으로 추대했을 정도다. 한국에서 독도의 사계 사진을 가장 정확하게 많이 찍은 사진가로도 유명하다. 2006년 그가 펴낸 3권짜리 대형 사진집 『꽃의 신비』는 2007년도 대한민국 출판대상을 받았다.

김정명씨는 지난 15년 동안 ‘한국의 야생화’란 제목으로 달력을 내고 있다. 같은 야생화라도 매해 주제를 달리한다. 제15집이라 찍힌 2009년 달력의 주제는 ‘꽃가루받이의 신비’다. 진한 향기로 곤충을 유혹해 꽃가루받이를 하고 있는 야생화의 빛나는 순간을 지극정성으로 담았다.

꽃 하나 찍는 데 며칠에서 몇십 일씩 매달리는 고집이 사진에 배어 있다. 그가 9000원짜리 달력을 서점에 내놓지 않고 주문 판매(02-765-3520)만 하는 까닭이다. 자신이 공을 들인 만큼 보는 이도 귀하게 여겨줬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한번 그의 달력을 걸어놓고 바라보던 이들은 다른 건 못 쓰겠다는 사연을 전해오곤 한다. 몇십 부씩 주문해 아는 이들과 나눠 쓰는 이도 많다.

홍익대 미대 출신의 펜화가 김영택씨는 사라지거나 변형된 한국의 전통 건축과 문화재를 치밀한 펜화로 되살리는 작품으로 명성을 얻었다. 현장 사생을 기본으로 수십 만 번 손작업이 가야 겨우 한 점 완성될 만큼 고단위 품이 드는 일이라 보는 이가 질릴 정도다. 하루 온종일 그렸는데도 흰 종이의 십 분의 일을 채우지 못할 때가 많다는 작가는 “때로 한숨부터 나온다”고 털어놓는다. 불경(佛經)을 사경하는 마음으로 한 획 한 획 철필을 그어갈 뿐이라고 한다.

2002년부터 김씨가 펴낸 펜화 달력은 외국인에게 한국 고건축의 아름다움을 자연스레 알리는 홍보대사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윽한 향취에 담백한 품격이 절로 우러나와 선물용으로 찾는 이가 많다고 한다. 2007년 정해년(丁亥年) 달력의 경우는 작품의 소재가 된 곳의 자료 사진과 해설을 달아 일종의 인문지리지 구실을 했을 뿐 아니라 아랫도리 날짜 부분을 잘라내면 작품집으로 변신하게 꾸몄다.

2009년 펜화 달력의 주제는 ‘옛 도성의 문루(門樓)’. 강화 진해루부터 숙정문까지 한양 도성과 수원 화성의 성곽 등을 다뤘다. 김영택씨의 솜씨를 지켜본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이 작품 발주를 했고, 전국의 국립박물관 아트숍에서 1만원에 판매될 예정이다. 김영택씨는 또 내년부터 한국 울타리를 넘어 ‘세계의 문화 유산’을 펜화로 풀어내는 작품을 시작한다. 우선 이웃 일본의 고건축으로 출발해 멀리 유럽까지 발걸음을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해외 작업도 달력으로 만들어 본바닥에 수출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밝혔다.

정재숙 | 제89호 | 20081123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