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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07.09.27] 꽃에 미친 남자 둘 가을이 내립니다. 구절초가 핍니다. 높은 산이 물들고 깊은 골이 옷 벗습니다. 두 사람이 있습니다. 꽃미남입니다. 꽃에 미친 남자란 뜻이죠. 둘은 서로 모릅니다. 나이가 다릅니다. 살아온 이력도 다릅니다. 한 사람은 인터넷에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아날로그 필름의 질감을 사랑합니다. 한 사람은 블로그로 생각을 펼칩니다. 디지털 카메라가 벗입니다. 그런데 닮았습니다. 집념이 보통 아닙니다. 우리 풀꽃과 나무가 둘의 도반입니다. 이들 보며 불광불급(不狂不及)을 생각합니다. 미쳐야 미칩니다. 김·정·명 이·동·혁 두 사람이 가을엽서를 보내왔습니다.
생태사진가 김정명…우리 꽃 들고 세계로 나갈 거야
위슬리의 충격 2005년에 런던 위슬리 식물원에 갔을 때예요. 한국단풍 30여 그루가 서있어요. 일련번호가 찍힌 명찰을 달고 고도별로 말예요. 연구사가 그럽디다. 당신네 나라 내장산 단풍 유명한 거 안다. 그래봐야 산 밑에서 일주일 정도 아니냐. 산꼭대기부터 아래까지 길 따라 죽 심어놓으면 한 달은 즐길 수 있지 않나. 아니, 영국 사람이 나보다 더 잘 알아요. 그러면서 말해요. 단풍이 화르르 사나흘 불타는데 그거 일주일 정도로 늘리면 어마어마한 돈이다. 그거 연구하고 있대요. 한국단풍에 자기네 품종을 접붙여 개량하고 있대요. 충격이었지요. 사진 찍어 왔죠. 정부에서 그거 보고 용역 줄 테니 해외의 우리 식물 실태를 조사해 달래요. 싫다고 그랬어요. 나 하고 싶은 공부나 하겠다고. 그건 학자들의 영역이거든요. 난 사진쟁이예요. 외국에서 왜 우리 식물에 눈독을 들이는지 아세요? 장점이 많기 때문이지요. 설악산은 여름에 영상 25도까지 올라가요. 겨울엔 영하 25도까지 떨어지죠. 연교차가 50도나 되는 지역에서 식물유전자가 견디는 곳은 세계에서 몇 군데 없어요. 파리나 런던의 겨울은 영하 2도, 3도예요. 영하 8도만 내려가도 웬만한 건 다 얼어 죽어요. 추위와 더위에 단련된 우리 식물은 끄떡없지요. 지구온난화도 문제가 안 돼요. 눈 밝은 외국인들이 이런 우리 꽃에 일찍부터 눈독을 들였어요. 우리가 무관심한 사이에 솔솔 빼내갔어요. 크리스마스 트리로 최고로 치는 구상나무가 그렇고, 세계 라일락 시장의 30%를 차지하는 미스킴 라일락이 그래요. 동백처럼 잎이 반짝이는 홍도비비추는 잉거비비추란 이름으로 팔리고 있어요. 멸종 위기의 나도승마는 국내서는 손대면 1000만원 벌금에 2년 이하의 징역을 살죠. 바깥에 나가면 대량 번식돼 한 포기에 5000원이면 사요. 지난 몇 년간 외국 유명 식물원을 찾아다녔어요. 밖에 나가 이름 바뀌고 대접받는 우리 식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공식적으로는 우리가 내보낸 식물이 하나도 없다는데 말이에요. 정작 이 땅에서는 그런 일이 있는지도 제대로 몰라요. 내 나라 우리 꽃 젊어서부터 우리 것을 찾아다녔다. 한국의 얼·멋·자연을 영상으로 사진으로 옮겼다. 안방처럼 산을 드나들었다. 그런데, 꽃을 찍으며 꽃 이름을 모르는 자신을 발견했다. 꽃의 생태는 더 알 수 없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고 가르쳐 주는 데도 없었다. 혼자 공부했다. 길 가다 새로운 꽃을 만나면 그 자리에서 열흘이고 보름이고 말을 걸었다. 속살 꼭꼭 감추고 있던 꽃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일년에 200일 넘게 밖에서 살았다.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독도에서 홍도까지 속속들이 뒤지고 다녔다. 그러다 ‘동강할미꽃’을 만났다. 이 땅의 유일한 식물로 학계가 인정해 학명을 얻었다. 멸종위기의 금강초롱과 나도승마도 찾아냈다. 도봉산에서 발견한 노랑할미꽃은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는다. 눈 감으면 어디서 무슨 꽃이 피고 어느 꽃이 지는지 훤히 보인다. 1100고지에 한라구절초가 피면 제주의 가을이 익는다 설악산의 사계를 찍어 대한민국문화영화제 작품상을 받기도 했다. 텔레비전에 ‘한국의 야생화’ 시리즈를 8년간 내보내며 이름이 알려졌다. 이제 해외에서도 그의 사진을 알아준다. 영국 자연사 박물관 홈페이지 사진 검색 코너 (http://piclib.nhm.ac.uk/piclib/www)에서 KIM을 입력하면 그의 작품들이 뜬다. 1장 내려받아 쓰는 데 1000달러 이상이다. 벼랑을 기고 파도를 넘어
절벽 위에 피는 꽃이 화려한 이유가 있다. 번식 본능 때문이다. 뿌리내리고 있는 얼마 안 되는 흙더미를 비바람이 언제 쓸어갈지 모른다. 꽃이 그걸 먼저 안다. 진한 색으로 나비를 부르고, 짙은 향기로 벌을 모으는 심정은 절박하다. 산 아래로 갈수록 색깔이 희미해지고 향기가 옅어진다. 사진작가에겐 절벽 위의 저 꽃이 어쩔 수 없는 유혹이다. 본능에 따라 능선을 타고 벼랑을 긴다. ‘얼짱 각도’를 찾아 곡예를 한다. 2002년 백두산에서였다. 바위를 타는 데 저쪽에서 시커먼 구름이 몰려왔다. 삽시간이었다. 산꼭대기에서는 번개 피할 데가 없다. 장비를 다 던졌다. 650만원짜리 카메라도 버렸다. 정신없이 몸을 굴렸다. 라디오방송에 나가 산에서 날씨 조심하라며 그 이야기를 했다. 얼마 전에 북한산에서 번개 맞아 여러 명이 죽자 긴가민가하던 사람들이 말했다. 당신 말이 맞다고. 1987년 방송촬영을 위해 독도에 갔을 때였다. 알고 보니 국제해양법상 독도는 암초(Rock)였다. 영유권 주장의 근거가 되는 자연섬이 되려면 물·나무·사람 세 가지가 있어야 했다. 물이 나고, 사람은 ‘넣으면’ 되니, 나무만 심으면 됐다. 뜻있는 사람들과 ‘푸른 독도 가꾸기’ 모임을 만들었다. 수시로 드나들며 나무를 심었다. 독도는 이제 바위섬이 아니다. 섬에는 들어가야겠는데 95년부터 입도허가가 나지 않았다. 어민들은 예외라는 걸 알고 울릉도에서 오징어잡이 배를 빌렸다. 1주일에 400만원, 비싸면 하루 100만원씩 줘야했다. 배에서 먹고 자며 날씨가 좋으면 얼른 내려 나무를 둘러보고 셔터를 눌렀다. 제지하는 경비대에게 말했다. 나를 잡아 가둬라. 내 나라 땅에서 사진도 못 찍는가. ‘고약한 싸움꾼’ 몸을 던졌는데, 인생을 걸었는데, 흘린 땀이 얼마인데 내 사진을 쉽게 봐요. 방송사에서 내 꽃을 허락 없이 계속 써요. 별렀죠. 소송을 걸었어요. 외국 저작물에는 꼬박꼬박 돈을 내면서 국내 작가들은 우습게 보는 거잖아요.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며 주위에서 말려요. 내가 고약해요. 싸움꾼이거든요.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각서 받았어요. 정부 부처도 그래요. 인터넷 홈페이지에 버젓이 내 사진을 올려놓는 거예요. 문제 제기하니 돈 몇 푼으로 넘어가려고 해요. 판사에게 그랬죠. 내가 돈 벌려고 그러는 게 아니다, 여기서 합의해주면 저 사람들 잘 모른다, 저작권이 뭔지를 알려주려고 그러는 거다. 지금 그 사람들 나한테 고마워해요. 재작년에 백두산에 갔어요. 표 사면 주는 팸플릿에 내 사진이 있더군요. 중국 작가들이 심의해서 뽑았다는 거예요. 나한테는 물어보지도 않고. 본때를 보여주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동북공정이니 뭐니 하며 백두산에서 사진 찍는 거 간섭하고 돈 내라 하고 괘씸하잖아요. 내 사진 팬들 곳곳에 있어요. 사진 도둑 다 알려주죠. 돈, 중요하지만 중요하지 않아요. 독도 사진만큼은 써도 그냥 놔둬요. 돈 벌 목적으로 쓰지 않는다면 말이죠. 지하철 무가지에 50회분의 시리즈를 싣고 있어요. 젊은이들이 많이 보는 신문이라기에 사진 공짜로 줬어요. 눈 들어 세계로 제 이름을 잃고 다른 이름으로 팔리는 우리 꽃의 현실이 안타까웠다. 우리 꽃의 매력을 혼자 알고 있기엔 아쉬웠다. 95년부터 작은 사진달력을 만들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책상 앞, 밥상 앞에 두고 보며 공부하면 좋을 거라 생각했다. 조금씩 늘어난 매니어가 이제 5000여 명이다. 연하장과 선물로 그만이라고 해외에서도 주문한다. 블로그나 홈페이지가 없어 전화로만 파는데도 한 달이면 동난다. 한 권에 9000원짜리, 많으면 5만 권이 나간다. 대기업에서 선물용으로 대량주문을 하기도 하지만 거절한다. 공짜로 얻은 사람들이 그 가치를 모를까봐서다. 수집가까지 생겨 오랜 것은 20만원가량 한다. 매년 주제가 달라진다. 다음주에 나오는 14번째 달력의 주제는 ‘꿈속의 꽃’이다. 2002년부터는 해뜨는 독도 사진을 맨 앞에 넣는다. 그에게 독도는 섬 그 이상이다. 『꽃의 신비』, 올 초에 펴낸 이 책은 인생 중간결산서다. 모두 3권, 수록사진 2500장, 무게 14kg이다. 12억원을 들여 4년 걸려 만들었다. 20여 년간 찍어온 사진 중에서 고르고 골랐다. 경비행기를 빌려 산하를 담았다. 그 아래 골짜기가 품은 풀꽃을 걸어서 찍었다. 그냥 사진집이 아니다. 생생한 다큐멘터리다. 인터넷으로는 느끼지 못할 웅장한 스케일이다. 자칫하면 세상 빛을 보지 못할 뻔했다. 유학 가는 작은 딸이, 저녁 사주는 아빠 친구들에게 말했다. 짐 싸다가 금고를 하나 봤어요. 이상했어요. 뭔가 하고 열어보니 필름이 잔뜩 쌓여 있어요. 아빠 저거 뭐할 건데 물어봤더니 죽으면 관 속에 같이 넣으래요. 국내에서는 알아줄 사람도 없다며, 사진쟁이의 자존심이라며. 그 얘기가 퍼졌다.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필름 좀 보자, 얼마든지 기다릴 테니 책으로 내자. 미국서 변호사 하는 큰딸 부부가 이 책을 영문으로 번역했다. 책 만들어 보니 ‘사람 할 짓이 아니었다’. ‘할 짓 아닌’ 일을 해낸 그가 더 큰 일을 꾸미고 있다. 이번엔 식물생태 관찰 초대형 시리즈다. 쟁쟁한 전문가들과의 공동작업이다. 꽃 하나에 3,4년을 매달리기도 한다. 목표는 세계시장이다. 두 번 만나고 네 번 통화했다. 수화기 깨져라 울리는 목소리가 옆 사람에게까지 들린다. 나 아직 젊고 할 일 많다는 예순둘의 젊은 오빠, 김·정·명 만세다. 우리 꽃 독립 만세다. 글=안충기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